
손끝에서 후 불면 사라질 그 먼지가, 세상을 다 짊어졌다
― 삼성전기와 MLCC, 그리고 무라타
여기, 손끝에 검은 알갱이 하나가 놓여 있다고 하자.
참깨보다 작다. 요즘 것은 모래 한 알보다도 작아서, 손끝에 얹고 후 불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값은 낱개로 몇 원 남짓.
그런데 손바닥만 한 AI 서버 한 대에는, 이 먼지 같은 게 2만 8천 개가 들어간다. 스마트폰 한 대에 천 개, 전기차 한 대에 만 오천 개. 세상의 거의 모든 전자제품 속에, 아무도 모르게 이게 박혀 있다.
2024년, 한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한국의 어느 회사를 기초자산으로 한 2배 레버리지 ETF를 내놨다. 외국인들이 그 회사 주식에 돈을 걸겠다고 몰렸다. 삼성전자가 아니었다. 이름이 비슷해 실수한 줄 알았던 그 회사 — 삼성전기였다.
그 회사가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검은 알갱이다.
이름은 MLCC.
전자산업의 쌀. 그런데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MLCC는 적층세라믹콘덴서다. 하는 일은 단순하다. 전기를 일정하고 깨끗하게 흘려보내는 것. 전압이 출렁이지 않도록 받아 두었다 내보내는, 아주 작은 저수지 같은 부품이다.
라디오·TV·PC·자동차 — 전기가 흐르는 것에는 예외 없이 들어간다. 없으면 안 된다. 그런데 소비자는 이게 있는지조차 모른다. 언제나 완제품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화면 선명한 TV를 사지, 그 안의 콘덴서를 사지 않는다.
이 부품의 숙명은 단 하나였다. 계속 작아지는 것. 첨단 제품이 얇아질수록, 더 많은 걸 더 좁은 데 욱여넣을수록, MLCC는 더 작아지고 더 작아져야 했다. 한 겹으로 안 되니 수백 겹을 쌓아 올렸다. 그래서 멀티레이어, MLCC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작아질수록, 이걸 만드는 회사는 커졌다.
한때 삼성전기는 드물게 소비자 광고를 낸 적이 있다. 부품 회사가, 소비자에게. 광고 문구는 이랬다. "우리 부품에서 사금(沙金)이 나온다." 도금 공정에 실제로 귀금속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지 한 알에, 금이 박혀 있었던 셈이다.
시작은, 남의 이름을 빌린 부속품이었다.
출발은 초라했다. 1973년, 회사 이름부터가 '삼성-산요 파츠'. 파츠, 곧 부품. 심지어 앞에는 일본 산요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 시절 삼성전자는 사실상 조립 공장에 가까웠다. 부품 만들 기술이 없어 거의 전량을 일본에서 사 왔다. 그 부품을 국산화하겠다고, 일본 산요의 기술을 빌려 세운 하청이 삼성전기였다. 남의 이름을 달고, 모회사가 시키는 부품만 대는 자리. 그게 시작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 산요라는 회사도 시작은 부품이었다는 점이다. 파나소닉을 세운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인척 사이였던 이우에 도시오가, 전후의 격랑 속에 마쓰시타를 떠나며 공장 하나와 파나소닉에 납품하던 물량만 들고 나와 차린 게 산요였다. 남의 완제품에 부품을 대던 자리에서 출발한 회사가, 훗날 워크맨마다 배터리를 넣던 그 산요가 된 것이다.
어쨌든 삼성전기의 손은 빨랐다. 설립하고 한 달도 안 돼 대만에 튜너 5천 개를 OEM으로 처음 수출했다. 그 무렵 한국이 늘 하던 방식, 빨리빨리였다.
그러다 방향이 바뀐다. 부품을 국산화하겠다는 정부 방침과, "우리도 세계적인 부품 회사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이병철의 의지가 겹쳤다. 1980년 부품연구소를 세우고, 산요라는 이름을 먼저 뗐다. 1983년 산요가 지분까지 완전히 빼자, 1987년 마침내 '삼성전기'라는 제 이름으로 홀로 섰다. 1985년에는 전자부품 업계 최초로 1억 달러 수출탑을 쌓았다.
가장 중요한 결정은 그다음이었다. 모회사 한 곳에만 대는 '올리벤더'로 남으면, 삼성전자가 흔들리는 순간 부품사도 같이 죽는다. 그래서 삼성전기는 선을 긋는다. 우리의 고객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전자회사다. 앞선 산업 하나에 매달리기를 거부한 그 순간, 부속품은 비로소 독립한 부품이 됐다.
태워야 했다. 그래야 세계로 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품질이었다. 한국 부품은 일본 것과 똑같이 만들어 더 싸게 팔 수 있었지만, 늘 한 가지가 아쉬웠다. 수율이 안 나오고, 불량이 났다. 값은 이겨도 신뢰를 못 이겼다.
1993년, 이건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외친 신경영. 불량품을 운동장에 산처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화형식이었다. 싸구려로는 세계에 못 나간다는 걸, 태워서 몸에 새겼다.
문은 미국에서 열렸다. 1991년, 삼성전기는 다층기판을 세계 최대 하드디스크 회사 시게이트에 처음 납품한다. 가장 까다로운 시장을 뚫었다는 건, 나머지 세계로 나가는 길이 열렸다는 뜻이었다. 중국, 동남아, 유럽, 멕시코로 공장이 뻗어 나갔다.
물론 위기도 왔다. 모회사의 야심이 부품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삼성자동차. 삼성전기는 자동차 부품으로 발을 넓히고 지급보증까지 섰다가, 삼성자동차가 무너지자 수백억 원을 날렸다. 앞선 산업이 무너지면 뒤에 선 부품도 함께 무너진다는 걸, 이번엔 제 살로 배웠다. 그래도 워낙 알짜였던 터라 존폐까지 가지는 않았다. 외환위기 직전 삼성전기는 이미 매출 1조 원, 수출 10억 달러를 넘긴 회사였다.
그리고 외환위기 직후, IT 붐이 불었다. 휴대폰이 열리고, 스마트폰이 왔다. MLCC·기판·카메라모듈이 한꺼번에 터졌다. 삼성전기는 소재·고주파·광학이라는 세 갈래 기술과 여덟 개 제품에 힘을 몰아넣었다. 돈 안 되는 건 버리고, 시대가 쓰는 것에만 팠다. 카메라는 접어서 당기는 폴디드줌까지 갔다. 부품은 더 작아지고 더 작아졌고 — 회사는 더 커지고 더 커졌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4%에서 13%로, 다시 18%로 올라섰다.
게다가 쓰이는 데가 너무 많아지자 물량이 달렸다. 개수가 늘어나는데 값까지 오르는, 이른바 P와 Q가 함께 뛰는 드문 장사가 됐다. 여기까지도 이미 대박이었다. 그런데 AI 서버가 오면서 판이 한 번 더 커졌다. 손바닥만 한 서버 한 대에 2만 8천 개. 대박이 초대박이 됐다.
그런데 그 위에, 넘사벽이 하나 버티고 있었다.
18%까지 왔는데도, 위에는 40%가 넘는 회사가 요지부동으로 앉아 있었다. 무라타. 그래서 삼성전기 주가는 늘 무라타와 함께 움직인다.
무라타를 세운 건 1944년, 교토의 한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때 폐결핵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의 도자기 가마에서 흙을 구웠다. 남들 다 하는 도자기로는 안 된다며 특수 도자기로 방향을 틀었고 — 그 도자기 굽던 기술이, 세라믹 콘덴서가 됐다. MLCC의 먼 조상이다.
무라타의 철학은 하나다. 가격 경쟁을 하지 않는다. 남이 흉내조차 못 낼 기술로만 이긴다. 소재 배합, 초미세 적층, 고온 소성 — 이 세 단계 기술을 80년 가까이 혼자 쥐고 있는데, 무슨 기술인지 아무도 모른다. 소재까지 직접 배합하는, 코카콜라 원액 같은 블랙박스다. "모든 제품 속엔 무라타가 있다"는 말이 일본에 있다. 그런데 정작 무라타를 아는 소비자는 없다.
이 회사가 사는 방식도 유별나다. IT 버블이 꺼지며 실적이 흔들리자, 무라타는 남 탓 대신 '조직토개선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스스로를 뜯어고쳤다. 윗사람에게 대들기 어렵다는 일본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아래에서 대놓고 말하게 한 것이다. 현장엔 '개선사'라는 사내 자격증을 둬서, 품질을 감리하는 사람에게 권위를 실어 줬다. 회사가 시키지 않아도 개인이 호기심으로 파고드는 '책상 밑 연구'를 인정해 줬다 — 구글이나 3M이 하던 것과 같은 문화가, 교토의 부품 회사에 먼저 있었던 셈이다.
사람들은 이런 걸 '교토식 경영'이라 부른다. 교세라, 닌텐도, 호리바처럼 교토에서 큰 회사들에 공통된 색깔. 남들 가는 길로 안 가는 반골 기질, 오너가 곧 기술자, 빠른 의사결정, 그리고 한 우물만 미치도록 파서 세계 1등을 노리는 고집. 은행 문턱이 높으니 빚을 겁내고 현금을 챙겨 두는 보수적 재무는, 위기가 와도 이들을 쉽게 쓰러지지 않게 했다. 무라타의 영업이익률은 아무리 나빠도 좀처럼 15%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창업자의 삼남 무라타 츠네오가 2007년 사장에 올라 회사를 세계로 더 키운 뒤, 2024년에야 전문경영인에게 자리를 넘겼다.
그리고 여기서 진짜 이야기가 드러난다. 그 시절 이름을 떨치던 일본 브랜드들 — 소니, 산요, 샤프, 도시바. 하나같이 완제품에 제 이름을 크게 박았던 회사들이다. 지금 어디 있나. 도시바도, 샤프도 팔려 나갔다. 워크맨마다 들어가던 그 산요는 파나소닉에 흡수됐고, 그 파나소닉조차 별 재미를 못 보다 산요 가전을 중국 하이얼에 넘겼다. 소니에게 남은 건 이미지 센서 정도다.
그런데 그 완제품들 속에 숨어 이름 한 번 못 내밀던 부품 회사, 무라타는 아직도 세계 1등이다. 완제품을 한 게 아니라, 부품을 했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가장 작아진 것이, 결국 가장 큰 것을 짊어졌다.
이름난 완제품들은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다 하나둘 내려갔다. 소니가, 산요가, 샤프가. 정작 끝까지 남은 건 그 화려한 것들 속에 숨어 이름 한 번 못 불린 부품 회사들이었다. 무라타가, 그리고 그 뒤를 80년째 좁혀 오는 삼성전기가.
삼성전기가 남의 이름(산요)을 빌려 부품을 배우던 그 시절, 정작 산요는 사라졌고 부품을 배운 쪽이 남았다.
다시, 손끝의 그 검은 알갱이로 돌아가 보자. 참깨보다 작아, 후 불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졌을 그 먼지 한 알. 값은 낱개로 몇 원. 그것이 지금, 손바닥만 한 AI 서버 한 대에 2만 8천 개씩 올라타고 세상을 움직인다.
세상에서 가장 작아진 그것이, 끝내 가장 큰 것들을 다 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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