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쉰 살에, 적의 후방으로 침투하는 법을 배웠다
― 1945, 유일한과 유한양행
1945년, 캘리포니아 앞바다의 산타카탈리나 섬.
머리에 희끗희끗 흰 것이 섞이기 시작한 한 사내가, 폭약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TNT를 터뜨리고, 지뢰를 묻고, 적의 후방으로 소리 없이 침투하는 법. 무전, 사격, 지도 읽기.
함께 훈련받는 동료들 대부분은 그의 아들뻘이었다. 그의 나이, 만 쉰. 미국에서 손꼽히는 한인 사업가였고, 태평양 건너에는 그가 세운 제약회사가 있었다.
그가 굳이 이 섬에 있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의 암호명은 'A'였고, 이름은 유일한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이미 다 가진 사람이었다.
아홉 살에 홀로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이었다. 낯선 땅에서 미식축구를 하고, 미시간대학을 나오고, 대학 친구와 함께 숙주나물을 통조림에 담아 파는 회사를 차렸다. 동양의 채소를 미국인의 식탁에 올린 그 사업으로, 그는 미국에서 부를 일궜다.
성공한 이민자였다. 그대로 미국에 남았다면 평온한 부자로 늙었을 것이다.
그런데 1926년, 그는 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식민지가 된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울 종로 한복판에 회사 하나를 세웠다. 이름은 유한양행.
병들고 가난한 동포에게 약을 팔겠다는 회사였다. 1933년 내놓은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은 집집마다 상비약이 됐다. 미국에서 돈을 벌어 온 사업가가, 그 돈을 들고 일부러 가장 어려운 곳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1945년, 그가 적후방 침투를 배우러 섬에 들어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회사는 처음부터 '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도구'였으니까.
다만 작전은 끝내 실행되지 못했다. 침투 예정일을 앞두고 일본이 항복했다. 쉰 살 사업가가 목숨을 걸고 준비한 그 작전은, 광복이라는 더 큰 사건에 묻혔다. 그가 그 섬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한참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회사를,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운영했다.
보통의 창업자는 회사를 자기 분신으로 여긴다. 더 많이 갖고, 더 오래 쥐고, 자식에게 물려준다. 한국 자본주의의 기본값이 그랬다.
유일한은 거꾸로 갔다.
1936년, 그는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바꾸면서 종업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나눠줬다. 한국 최초의 '종업원지주제'였다. 회사의 주인을 직원으로 넓힌 것이다. 1962년에는 제약회사로는 처음으로 주식시장에 회사를 상장해, 그 문을 사회 전체에 열었다.
세금도 마찬가지였다. 정경유착과 탈세가 사업 수완으로 통하던 시절, 그는 끝까지 정직하게 냈다. 업계 최초의 모범납세 기업이었다.
회사가 커질수록, 그는 회사에서 자기 몫을 덜어냈다.
1969년, 그는 회사를 핏줄이 아닌 남에게 넘겼다.
은퇴를 앞둔 그의 곁에는 부사장으로 일하던 아들이 있었다. 누가 봐도 다음 사장은 아들이었다.
유일한은 아들을 포함한 친족을 전부 경영에서 손 떼게 했다. 그리고 평사원으로 들어와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조권순에게 사장 자리를 넘겼다. 핏줄이 아니라 능력에 회사를 맡긴, 한국에서 거의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회사의 주인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던 말을, 그는 자기 회사로 증명해 버렸다.
그리고 1971년 3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유언장이 열렸다.
손녀에게는 대학 학자금 1만 달러. 딸에게는 묘소 주변 땅을 물려주되 "공원으로 꾸며 학생들이 마음껏 거닐게 하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부사장이던 아들의 몫은 — 사실상 없었다.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그게 아들에게 남긴 전부였다. 나머지 전 재산은 교육과 사회로 돌아갔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다시, 1945년의 그 섬으로 돌아가 보자.
쉰 살의 사업가가 폭약을 배운 이유와, 유언장에서 아들에게 한 푼도 남기지 않은 이유는 사실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단 한 번도 '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회사도, 재산도, 심지어 목숨까지도.
이건 그저 한 위인의 미담이 아니다. 우리가 주식을 살 때 가장 먼저 따져야 할 질문과 정확히 닿아 있다. 이 회사의 주인은 회사를 자기 것으로 빼먹는 사람인가, 회사에 자기를 바치는 사람인가.
오너가 회삿돈을 제 주머니처럼 쓰고, 능력과 무관하게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소액주주의 몫을 가벼이 여길 때 — 우리는 그걸 '오너 리스크'라 부른다. 백 년 전 유일한은 그 반대편에 서서, 회사의 주인을 직원과 사회로 넓혀 놓았다. 그가 세운 회사는 지금도 창업주의 친인척이 단 한 명도 경영에 없다.
그가 섬에서 배운 건 폭약 다루는 법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가진 것을 끝까지 제 것으로 쥐지 않는 법, 그거였는지도.
쉰 살에 적진으로 들어가려 했던 그 사람은, 결국 회사 하나를 통째로 사회의 손에 쥐여 주고 떠났다. 그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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