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바다에 빠져 죽자
― 1970, 박태준과 포항제철
1970년 무렵, 경북 영일만.
황량한 모래밭이었다. 갈대와 모래언덕뿐인 그곳에, 판잣집 한 채가 서 있었다. 사막에서 전차로 영국군을 괴롭힌 독일 장군의 이름을 따, 사람들은 그 허름한 본부를 '롬멜하우스'라 불렀다.
그 앞에, 사내 서른아홉 명이 모래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제철소를 짓겠다고 모인 창업 요원들이었다. 그들 앞에 선 사령관 같은 남자가 동쪽 바다를 등지고 외쳤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 해서 저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
그때 한국에는, 쇳물을 끓이는 고로(高爐)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박태준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제철소는 산업의 심장이다. 철이 있어야 자동차도, 배도, 건물도 만든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절실했다. 하지만 그만큼 돈이 많이 들고, 그만큼 아무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세계은행이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 종합제철은 경제성이 없다." 미국과 유럽의 차관단도 등을 돌렸다. 선진국의 계산기로는, 고로 하나 없는 농업국이 제철소를 짓겠다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빌릴 곳이 다 막혔을 때, 박태준은 전혀 다른 데서 돈을 찾아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의 대가로 내놓은 대일청구권 자금. 본래 농업과 수산업에 쓰기로 묶여 있던 그 돈을, 제철소 건설로 돌린 것이다.
그 결정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 돈은 그냥 돈이 아니었다. 박태준은 그것을 이렇게 불렀다.
"우리 조상들의 피의 대가다."
식민지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핏값으로 짓는 제철소. 그러니 실패는 단순한 사업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상에게 짓는 죄였다. 우향우 해서 바다에 빠져 죽자는 말은, 비장한 수사가 아니라 그 돈의 무게에서 나온 진심이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 물러설 곳을 없앴다.
대통령이 건넨 종이 한 장.
퇴로를 없앴다고 길이 열리는 건 아니었다. 1970년의 한국은 정경유착의 시대였다. 거대한 국영기업이 생긴다는데, 설비를 사고 공사를 맡기는 자리마다 정치인들의 손이 뻗쳐 왔다. 리베이트를 달라, 우리 쪽에 일을 맡겨라.
박태준은 청와대로 가 박정희에게 그 압력을 토로했다. 이대로면 제철소가 시작도 전에 썩는다고.
박정희는 말없이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박태준이 요지를 적자, 그 위에 친필로 서명을 해 건넸다.
"번거롭게 나를 찾지 말고, 이걸 보여주며 소신대로 밀고 나가라."
훗날 '종이마패'라 불린 그 종이였다. 그 한 장이, 권력의 손길로부터 제철소를 지키는 방패가 됐다. 정경유착이 상식이던 시절, 영일만의 모래밭만은 그렇게 청정지대로 남았다.
그 결벽은 현장에서도 똑같았다. 1977년, 공정률 80%까지 올라간 구조물에서 부실시공이 발견되자 그는 외국 기술감독까지 불러 모은 자리에서 폭파를 명령했다. 다 지은 것을 무너뜨려 처음부터 다시 쌓게 했다. "포철 사전에 부실공사란 없다"는 말은, 그렇게 다이너마이트로 증명됐다.
그리고, 첫 쇳물.
1973년 6월 9일 새벽. 영일만의 고로에 처음으로 불이 들어가고, 마침내 시뻘건 쇳물이 흘러나왔다.
지켜보던 박태준과 직원들이 모래밭 위에서 만세를 불렀다. 우향우 해서 빠져 죽자던 그 바다 앞에서, 그들은 빠지지 않았다. 그해 첫 준공으로 포항제철은 연 100만 톤이 넘는 쇳물을 쏟아내는 체제를 갖췄다. 세계은행이 "경제성 없다"던 그 제철소는, 이후 세계가 손꼽는 철강회사로 자라난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다시, 모래밭의 그 서른아홉 명에게 돌아가 보자.
박태준이 한 일의 본질은 '돈을 구한 것'도, '제철소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실패를 곧 죽음과 죄로 만들어, 자신과 동료들이 물러설 곳을 스스로 불태운 사람이었다. 돈의 출처가 조상의 핏값이었기에, 후퇴라는 선택지 자체가 사라졌다.
이건 투자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는 어떤 회사에 돈을 걸 때, 결국 그 회사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보고 건다. 그때 가장 미덥지 못한 건 빠져나갈 구멍을 잔뜩 챙겨 둔 경영자다. 실패해도 제 몫은 챙기는 사람, 손해는 주주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멀쩡한 사람. 반대로 가장 무서운 건, 자기 운명을 회사에 통째로 묶어 버린 사람이다.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만큼 끝까지 가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러니 좋은 회사를 가릴 때 던질 질문은 이것이다. 이 회사를 끌고 가는 사람은 어디로든 빠져나갈 준비를 해 두었는가, 아니면 자기 배를 이미 불태웠는가.
1988년, 그 모래밭에서 시작된 회사가 주식시장에 올랐을 때 — 320만 명이 넘는 국민이 그 주식을 사겠다고 몰렸다. 우향우 해서 빠져 죽자던 그 바다 앞의 제철소는, 그렇게 국민의 회사가 됐다.
빠져 죽기로 했던 사람들은, 끝내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 물러설 곳을 스스로 없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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