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그는 돌을 깎아 만들었다
― 1956, 임대홍과 미원
1956년, 부산의 한 공장.
한 사내가 돌을 깎고 있었다. 조미료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기계가 아니라 돌덩이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감칠맛의 정체인 글루탐산을 뽑아내려면 강한 산으로 원료를 녹여야 하는데, 그 독한 산을 어떤 쇠솥도, 어떤 용기도 견디지 못했다. 끓이는 족족 통이 삭아 버렸다.
그래서 그는 산에도 녹지 않을 그릇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전북 황등산의 돌이 철분과 성분이 알맞다는 걸 알아내, 그 돌을 골라 넉 달에 걸쳐 솥을 깎았다. 일본이 수십 년간 기계로 만들어 온 것을, 그는 돌솥 하나로 따라잡으려 한 것이다.
돌을 깎던 그 사내의 이름은 임대홍이었다.
그가 이기려던 상대는, 한 나라의 입맛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혀를 점령한 것이 있었다. 일본이 개발한 조미료, 아지노모토. 국수집도 중국집도 국밥집도 그 흰 가루에 길들었다. 그런데 일본이 패망하고 공급이 끊기자,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아우성이 터졌다. 밀수를 해서라도 구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임대홍은 생각했다. 저걸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나.
문제는 만드는 법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1955년, 그는 조미료의 본고장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의 한 조미료 공장에 취직해, 어깨너머로 공정을 훔쳐봤다. 100일이 넘도록 실험실에서 먹고 자다시피 매달린 끝에, 글루탐산 제조법을 끝내 제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귀국해 1956년 부산 동대신동에 작은 공장을 차렸다. 동아화성공업 — 지금 대상그룹의 시작이었다. 그가 거기서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이, 바로 그 돌솥이었다.
돌솥 하나가 한 달에 만들어 내는 양은 15톤 남짓. 그렇게 옹기와 돌솥을 늘려가며 월 생산량을 다섯 톤에서 백오십 톤까지 끌어올렸다. 그렇게 태어난 국산 최초의 조미료가 — 미원이다.
자본의 삼성이, 20년을 따라붙었다.
미원이 일본산을 밀어내고 한국의 식탁을 장악하자, 거대한 경쟁자가 들어왔다. 1963년, 삼성의 제일제당이 '미풍'을 들고 조미료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자본도 인력도 삼성이 압도적이었다. 가격을 낮추고 외상도 깔았다. 누가 봐도 미풍이 미원을 누르는 건 시간문제 같았다.
그런데 안 됐다.
직원들이 흔들리며 "우리도 싸게 팔자, 우리도 외상을 주자"고 할 때, 임대홍은 거꾸로 갔다. "더 세게 나가라. 외상 없애고 현금만 받아라. 값은 더 비싸게 받아라. 우리 미원은 그 정도는 된다." 콧대를 높이자, 사람들은 오히려 미원을 더 고급으로 여겼다.
사은품 전쟁도 벌어졌다. 미풍이 털스웨터를 경품으로 걸자, 미원은 순금 반지를 걸었다. 정보전까지 벌이며 두 회사가 맞붙었지만, 1위는 끝내 바뀌지 않았다. 삼성이 20년 가까이 매달렸어도 그랬다.
훗날 이병철 회장이 세상에 마음대로 안 되는 것 셋으로 자식과 골프, 그리고 미원을 꼽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대홍이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은 더 서늘하다. "미풍은 삼성의 일부지만, 미원은 나의 전부다."
자본을 가진 쪽은 그것이 사업의 일부였고, 돌을 깎은 쪽은 그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다시, 돌을 깎던 그 사내에게 돌아가 보자.
삼성이 미원을 못 이긴 이유는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미원이라는 이름이 이미 한국인의 혀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각인은 자본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고, 임대홍은 그것을 돌을 깎고 일본에 잠입하고 100일을 굶주려 가며 손으로 만들어 냈다.
이건 우리가 좋은 회사를 고를 때 찾는 그 단어, '해자(垓子)'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다. 압도적인 자본이 들어와도 무너지지 않는 회사에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한번 길든 입맛, 한번 박힌 브랜드, 바꾸기 귀찮은 습관 같은 것. 워런 버핏이 코카콜라를 산 것도 결국 그 혀의 기억을 산 것이다.
물론 그 해자도 영원하진 않았다. 미원은 훗날 다시다에 1위를 내주고, MSG 논란 속에 회사 이름까지 대상으로 바꿔야 했다. 하지만 보라 — 2020년대 들어 사람들은 다시 미원을 사서 고기에, 국에 한 꼬집씩 넣고 있다. 70년 전 돌솥에서 나온 그 맛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니 어떤 회사를 살 때 물어야 한다. 이 회사가 가진 것은 자본으로 금세 따라잡힐 우위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돌을 깎듯 손으로 새겨 넣어 자본으로도 못 사는 우위인가.
임대홍이 깎은 것은 돌솥이 아니었다. 돈으로는 끝내 살 수 없는, 한 나라의 입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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