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를 당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꼭 태워만 주십시오
― 1958, 김재철과 동원
1958년 1월, 부산항.
대학 졸업을 한 달 앞둔 스물두 살 청년이, 원양어선 선장 앞에서 사정하고 있었다. 배에 태워 달라고. 보수는 한 푼도 바라지 않는다고.
선장은 각서를 내밀었다. 월급은 없고, 항해 중 무슨 일이 생겨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종이였다. 망망대해로 나가는 그 시절 원양어선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청년은 그 각서에 서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항해 중에 사고를 당한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꼭 태워만 주십시오."
그렇게 그는 국내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에 올랐다. 남태평양을 향해. 청년의 이름은 김재철이었다.
모두가 갇혔다고 본 곳을, 그는 출구로 봤다.
김재철은 전남 강진의 가난한 마을에서 난 수재였다. 농업학교를 수석으로 다녔고, 누가 봐도 서울대로 갈 학생이었다. 집안도 그걸 바랐다.
그런데 한 선생이 그를 붙들고 말했다. "내가 너처럼 다시 시작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바다에 미래를 걸겠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 보통은 그걸 '갇혔다'고 여겼다. 대륙 끝에 매달린 작은 반도라고. 하지만 그 선생의 말은 정반대였다. 바다는 한계가 아니라 길이라는 것. 청년은 그 말에 인생을 걸었다. 서울대를 버리고 부산수산대 어로학과로 갔다.
그리고 무급 각서에 서명하고 지남호에 올랐다. 배 위의 삶은 비참했다. 제대로 된 침대도 없었고, 막내라 청소와 잡일이 다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이 끝나면 영어와 항해 자료를 파고들었다. 장비가 변변찮던 시절, 영어로 된 해도를 읽을 줄 아는 이 젊은이 덕에 배는 길을 찾았다.
소문이 퍼졌다. 일도 잘하고, 공부도 하고, 항로까지 짚어 내는 청년. 경력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그는 스물여섯에 선장이 됐다. 국제 수산업계는 그를 '캡틴 J.C. 킴'이라 불렀다.
일본인조차, 이 청년에게 배를 외상으로 줬다.
선장 김재철은 나갈 때마다 만선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눈여겨본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거래처였던 일본 상사 도쇼쿠였다.
1969년, 도쇼쿠는 정부 보증도 은행 보증도 없이, 오직 김재철의 신용 하나만 보고 어선 두 척을 외상으로 내줬다. 37만 달러어치였다. 한국이 일본보다 한참 가난하던 시절, 일본 회사가 한국 청년 개인을 그렇게 믿었다.
그 두 척으로, 그는 자기 회사를 차렸다. 1969년 서울 명동의 한 빌딩, 자본금 1천만 원에 직원 셋. 동원산업의 시작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스타트업이었다.
남들은 "원양어업은 돈만 있으면 된다"며 쉽게 뛰어들었다 픽픽 쓰러졌다. 김재철은 달랐다. 사장이 된 뒤에도 직접 배를 탔다. "내가 사장인데, 내가 직접 나가겠다." 잡은 참치의 배를 갈라 뭘 먹고 사는지까지 들여다보며, 잡는 법을 끝없이 바꿨다. 오일쇼크로 경쟁자들이 무너질 때, 동원은 더 많이 잡아 올렸다.
바다에서 시작한 청년이, 그 바다의 주인을 샀다.
1982년, 동원은 국내 최초의 참치캔을 내놨다. 처음엔 비싸다고 외면받았지만, 소득이 오르면서 '동원참치'는 국민 식품이 됐다.
그 캔의 모델이 된 회사가 미국의 스타키스트였다. 김재철이 1981년 하버드 최고경영자과정 중 그 공장을 견학하며 "우리도 할 수 있겠다"고 마음먹은, 세계 최대의 참치 브랜드. 1960년대의 동원은 그런 스타키스트에 참치를 납품하던 작은 공급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 스타키스트가 매물로 나오자 — 동원이 약 3억 6천만 달러에 사들였다. 납품하던 회사가, 40여 년 만에 그 거인을 통째로 삼킨 것이다.
김재철은 바다에서 번 돈을 금융으로도 흘려보냈다. 한신증권을 인수해 동원증권으로, 다시 한국투자증권으로 키웠다. 훗날 미래에셋을 세운 박현주도 그 동원증권을 거쳐 갔다. 바다에서 시작한 회사가, 한국 자본시장의 한 축까지 길러 낸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다시, 무급 각서에 서명하던 그 청년에게 돌아가 보자.
김재철의 평생 지론은 한 권의 책 제목에 담겨 있다.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 지도를 뒤집어 놓으면, 한반도는 대륙 끝에 갇힌 반도가 아니라 태평양으로 뻗어 나가는 출발점이 된다. 같은 지도, 같은 바다인데 — 보는 방향을 뒤집자 한계가 기회가 됐다.
이건 투자에서 가장 비싼 능력이기도 하다. 모두가 악재라 부르며 던질 때 그 안에서 기회를 보는 눈. 남들이 "삼면이 바다라 갇혔다"고 할 때 "그러니 우리가 먼저 나가면 된다"고 읽는 관점의 전환. 위기가 깊을수록 그 전환은 더 큰 값을 한다. 동원이 금융위기 한복판에서 스타키스트를 손에 넣은 것처럼.
다만 김재철은 관점만 바꾼 게 아니었다. 그는 무급 각서에 서명하고 가장 먼저 그 바다로 몸을 던졌다. 지도를 거꾸로 보는 사람은 많지만, 그 거꾸로 된 지도를 들고 진짜 배에 오르는 사람은 드물다.
스물두 살의 청년이 목숨을 담보로 잡혀 가며 오른 그 배는, 끝내 세계의 바다를 건너 그 바다의 주인을 사 왔다.
모두가 갇혔다고 부른 바다는, 그에게 처음부터 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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