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영공에 들어갈 때까지, 이 봉투를 열지 마시오
― 1963, 전중윤과 삼양라면
1963년, 일본의 한 공항.
비행기에 오르려는 한국인에게, 일본인 사장이 다가와 봉투 하나를 슬쩍 쥐여 줬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비행기가 한국 영공에 들어갈 때까지, 이걸 열지 마시오."
봉투 안에는 자필 메모가 들어 있었다. 라면 수프의 제조법과 원료 배합 비율 — 그 회사의 일급 기밀이었다. 라면 기술은 면 만드는 법까지만 넘기고 수프 비법만은 절대 안 된다는 게 일본 업계의 불문율이었고, 그 사장의 직원들도 한사코 반대한 비밀이었다.
그걸, 라이벌 회사 사장이 떠나는 외국인에게 몰래 적어 준 것이다.
봉투를 받은 한국인의 이름은 전중윤이었다.
왜, 일본인은 라이벌에게 비밀을 줬나.
전중윤은 원래 라면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강원도 산골 출신으로 선린상업학교를 나와, 해방 뒤 동방생명(훗날 삼성생명의 전신) 창립에 참여한 보험맨이었다. 1961년엔 경영난에 빠진 제일생명 사장으로 초빙됐다. 남부러울 것 없는 금융인이었다.
그를 바꾼 건 남대문시장의 한 줄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끓인 '꿀꿀이죽' 한 그릇에, 5원을 들고 줄을 선 사람들. 그 줄을 본 사장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장면이 있었다. 일본 출장에서 봤던, 꼬불꼬불한 면을 끓는 물에 넣으면 한 끼가 되던 그 음식.
"보험은 오래 살자는 거 아니오. 그런데 지금 이 나라 사람들은 한 끼 때문에 줄을 서고 있소."
그는 보험사 사장 자리를 내려놓고, 라면 기계를 사러 일본으로 건너갔다. 손에 쥔 외화는 정부가 가까스로 배정해 준 5만 달러가 전부였다.
일본 업체들은 그를 호구로 봤다. 처음엔 만나 주지도 않았고, 부르는 값은 제멋대로였다. 그때 한 사람이 그를 다르게 봤다. 묘조식품의 오쿠이 사장이었다.
전중윤은 그 앞에서 솔직했다. 가진 돈은 5만 달러뿐이라고, 더는 없다고 그대로 밝혔다. 오쿠이는 생산 라인 한 개를 기술료도 로열티도 없이 2만 7천 달러에 주겠다고 했다. 한 개로는 수지가 안 맞으니 두 개를 깔라는 조언까지 얹어서.
그리고 공항에서, 그 봉투를 건넸다. 오쿠이가 훗날 밝힌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굴지의 금융인이었고, 무엇보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남은 달러를, 그는 정부에 돌려줬다.
전중윤이 기계값으로 쓴 돈은 2만 7천 달러. 정부에게 받은 5만 달러에서 2만 3천 달러가 남았다.
달러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암시장에 내다 팔면 적잖은 차익을 챙길 수 있었고, 그냥 다른 데 써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었다. 그는 남은 2만 3천 달러를 그대로 정부에 반납했다. 받은 돈에서 쓰고 남았으니 돌려준다는,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안 하던 일이었다.
오쿠이가 그를 정직한 사람으로 본 것은 거래할 때의 인상이었지만, 이 반납은 그 인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셈이다.
1963년 9월 15일, 서울 하월곡동 공장에서 첫 라면이 나왔다.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 한 봉지 10원. 곰탕이 50원이던 시절, 끼니를 굶는 사람을 위한 값이었다.
처음엔 안 팔렸다. 사람들이 '라면'을 실이나 천 이름으로 오해했다. 그는 전국을 돌며 직접 끓여 먹였고, 1960년대 후반 정부의 혼분식 장려 바람을 타고 라면은 마침내 이 나라의 한 끼가 됐다.
그가 쌓은 신뢰가, 단 한 장의 투서로 무너졌다.
1989년 11월, 검찰에 익명의 투서 한 장이 들어왔다. "삼양이 공업용 쇠기름으로 면을 튀긴다."
이른바 우지 파동이었다. 삼양이 쓴 건 일본에서도 쓰던 합법적인 식용 우지였다. 정부도 곧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은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 30%를 넘나들던 점유율이 10%대로 추락했고, 라면 100만 상자가 폐기됐다. 직원 천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전중윤은 사재를 털어 막았다. 누가 투서를 썼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주변에선 소송하라고 부추겼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끝난 사건에 매달리기보다 신뢰를 회복하는 데 매진하겠다." 7년 넘는 공방 끝에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다. 그는 그 무죄로 누구를 응징하는 대신, 조용히 회사를 다시 세웠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다시, 그 공항으로 돌아가 보자.
오쿠이가 라이벌에게 일급 기밀을 적어 준 것은 비합리적인 일이다. 계산기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가 건 것은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사람됨이었다. 정직한 사람은 받은 비밀로 자신을 망신시키지 않으리라는, 숫자에 없는 믿음이었다.
이건 우리가 주식을 살 때 가장 자주 잊는 변수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출과 영업이익률은 들여다보면서, 정작 그 회사를 끌고 가는 사람이 정직한지는 잘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식회계 한 줄, 오너의 거짓말 한마디에 멀쩡하던 주가가 하루아침에 반토막 나는 걸 우리는 수없이 봤다. 회계장부의 숫자는 결국, 그 숫자를 적은 사람의 정직함 위에 얹혀 있다.
전중윤은 남은 2만 3천 달러를 돌려줘서 그 비밀을 얻었고, 억울한 투서 앞에서도 초심을 지켜 회사를 되살렸다. 그리고 그 정직함의 끝에서, 그가 떠난 뒤 그의 며느리가 매운 찜닭집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보고 만든 라면 하나가 — 불닭볶음면이 — 뉴욕과 런던과 두바이의 젊은이들을 다시 줄 세우고 있다.
봉투 속의 비법은 결국 라면 한 봉지가 됐다. 하지만 오쿠이가 진짜 건넨 것은 수프 제조법이 아니었다. 정직한 사람에게만 열어 보이는, 사람에 대한 믿음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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